연천역 에스컬레이터 앞 유리창. 창틀이 하나의 액자가 되어 급수탑을 담아낸다.
연천역 화장실을 나와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던 순간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낯선 구조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창틀은 바깥 풍경을 하나의 액자처럼 잘라냈고, 그 안에는 오래된 콘크리트 구조물이 조용히 서 있었다. 일부러 구도를 잡은 것도 아닌데 한 장의 사진처럼 완성된 풍경이었다.처음에는 그저 오래된 시설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둥근 형태의 콘크리트 기둥과 작은 지붕, 아래쪽의 파란 문은 쉽게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급수탑 아래의 파란 철문. 낡은 콘크리트 위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결국 역 밖으로 나가 창문 너머로 보았던 구조물을 따라 걸었다. 멀리서 보던 풍경과 가까이에서 마주한 모습은 조금 달랐다. 콘크리트 표면에는 오랜 시간이 남아 있었고, 파란 철문에는 여러 계절을 견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철길 옆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은 기능을 잃은 시설이라기보다 시간을 기록하는 구조물처럼 보였다. 카메라를 꺼내 자연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정면에서도 찍고, 옆에서도 찍고, 다시 역 안으로 들어가 창문 너머에서도 한 번 더 담았다. 그제야 처음 창밖에서 마주했던 장면이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급수탑과 함께 놓인 철도 차량. 증기기관차가 오가던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취재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은 의외였다. 이 구조물은 연천역 급수탑이었다. 1914년 경원선 개통과 함께 세워져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당시 증기기관차는 일정한 거리마다 물을 보충해야 했고, 급수탑은 철도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될 기반 시설이었다. 디젤 기관차와 전기철도가 등장하면서 본래의 역할은 끝났지만, 급수탑은 철거되지 않았다. 지금도 연천역 곁에서 과거 철도의 시간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연천역 3번 출구 앞에 대기 중인 연천 시티투어 버스. 역은 도착의 공간이자 여행의 출발점이 된다.
연천역은 많은 사람에게 여행의 출발점이다. 전철에서 내린 사람들은 시티투어 버스를 타거나, 재인폭포와 호로고루 같은 관광지를 향해 이동한다. 대부분은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그 사이 창밖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오래된 철도의 시간이 먼저 여행자를 맞이한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치는 구조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 발걸음을 멈추면 그 풍경은 연천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을 조용히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연천역 광장 한편에 남아 있는 급수탑. 여행은 목적지보다 먼저 풍경을 만나는 일에서 시작된다.
좋은 풍경은 언제나 유명한 관광지에서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아무런 기대 없이 걷던 순간 더 오래 기억되는 장면을 만나기도 한다. 연천역 급수탑도 그랬다. 취재를 위해 일부러 찾아간 곳이 아니었다. 화장실을 나와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던 길, 창문이 만들어낸 하나의 액자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풍경이었다. 그 우연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카메라를 들게 했으며, 오래된 철도의 시간을 따라가게 만들었다. 연천에서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목적지보다 먼저, 창밖에 남아 있던 오래된 시간 하나를 바라보는 일에서부터.
연천역 급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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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걸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과 예쁜사진
연천의 다른 풍경을
보게 되네요
고맙습니다.